생활 속 가격은 왜 이렇게 늦게 움직였나
겪어보니 물가는 늘 가장 먼저 서민의 장바구니를 때린다. 빵값이 오르고 라면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체감부터 한다. 숫자는 뒤늦게 따라오지만, 생활은 이미 흔들린 뒤다.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밀가루 담합 적발은 그런 불편한 진실을 다시 보여줬다. 국내 7개 제분사가 6년 가까이 밀가루 가격과 물량을 맞춰 움직였고, 그 결과 공정위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 총액은 6710억4500만원이다.
사실 이런 사건은 단순히 기업 몇 곳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밀가루는 라면, 빵, 국수, 과자 같은 국민 먹거리의 출발점이다. 원재료 가격이 왜곡되면 그 부담은 제분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빵업체와 제면업체, 제과업체를 거쳐 결국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지나고 보니 담합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하지만, 피해는 가장 넓은 곳에 번진다.
7개 제분사와 6년의 짬짜미
이번에 제재 대상이 된 업체는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이다. 공정위는 이들 7개사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담합을 이어갔다고 판단했다.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매출액 기준 87.7%에 달한다. 사실상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과점 구조였던 셈이다.
담합 방식도 교묘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과 물량 합의가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 총 2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여기에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이 55회나 있었다. 큰 틀은 임원급이 맞추고, 세부 실행은 실무자가 정리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는 흔히 말하는 ‘조직적 담합’의 전형으로 분석된다.
공정위가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넘기고 제재 절차에 들어간 것도 의미가 크다.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에 해당하는 문서다. 곧 위법 가능성이 단순 의혹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판단 단계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처리했고, 전원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사건 내용을 공개했다. 민생 물가와 직결된 사안에 대해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 항목 | 내용 |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2025년 10월 |
| 담합 횟수 | 총 24차례 |
| 회합 횟수 | 총 55회 |
| 시장 점유율 | 87.7% 또는 88% 수준 |
| 과징금 | 총 6710억4500만원 |
원맥 가격을 핑계로 한 인상, 하락기엔 느린 반영
밀가루의 원재료인 원맥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이 구조 자체가 가격 변동성을 키운다. 그런데 문제는 변동성이 크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변동을 경쟁이 아니라 합의로 다뤘다는 데 있다. 공정위는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원맥 시세 상승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빠르게 밀가루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인상 시점과 폭을 맞췄다고 봤다. 반대로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인하를 최대한 늦췄다.
이런 행태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 조정이 아니다. 경쟁이 살아 있으면 업체마다 반응 속도와 폭이 달라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모두가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폭으로 움직였다면, 그건 시장의 판단이 아니라 합의의 흔적이라고 보는 게 맞다. 공정위가 담합의 중대성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분사별 최소 상승폭 ■■■■■■■■■■■■■■ 38%
제분사별 최대 상승폭 ■■■■■■■■■■■■■■■■■■■■■■■■■■■■■■■■■■■■■■ 74%
공정위는 담합 시작 시점인 2019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이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가격 변동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시장 지배력, 정보 공유, 가격 동조화가 겹쳐 있다. 실제로는 이 상승분이 제빵과 제면, 제과 산업 전반의 비용을 끌어올린 셈이다.
보조금까지 받으며 이어진 담합의 무게
더 뼈아픈 대목은 따로 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지원한 기간에도 담합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7개사가 총 471억원을 지급받았음에도 담합을 지속했다고 밝혔다. 공적 지원은 가격 안정을 돕기 위한 장치였는데, 그 기간에 오히려 가격 왜곡이 이어졌다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의 관련 매출액을 약 5조6900억원에서 5조8000여억원 수준으로 산정했다. 그리고 법령상 담합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업체에 부과 가능한 최대 과징금은 최대 1조16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번 실제 과징금은 6710억4500만원이었지만, 제재의 방향성이 강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두고 “밀가루와 같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 등을 놓고 이뤄지는 담합에 대한 감시를 보다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단순 적발에 그치지 않고 가격 구조 자체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발언으로 읽힌다.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
가격 재결정 명령, 20년 만의 재등장
이번 사건에서 특히 눈에 띄는 조치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다. 담합 이전 수준으로 가격을 다시 산정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인데, 이번이 역대 세 번째 적용이다.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20년 만에 다시 가격 재결정이 논의된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공정위는 각 제분사에 대해 3개월 이내 자발적으로 가격을 다시 정하도록 하고,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1년에 두 차례 보고하도록 했다. 단순히 과징금만 내고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이후의 가격 변화를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지나고 보니 이런 사후 관리가 있어야 담합의 유인이 줄어든다.
더불어 공정위는 2006년에도 이미 같은 업계에 제재를 내린 바 있다. 당시 8개 제분사가 생산·판매량을 공동으로 제한하거나 판매가를 담합 인상한 행위로 43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일부 업체들은 소송까지 갔지만 패소했다. 이번에 다시 이름이 거론된 업체들 가운데는 그때의 당사자나 전신이 포함돼 있다. 같은 업계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서울중앙지검도 별도로 움직였다. 검찰은 밀가루 가격 변동 여부와 폭, 시기 등을 합의한 혐의로 제분 7사 중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공정위가 조사하는 동안 검찰이 고발 요청을 한 이례적인 상황도 있었다. 민생 품목의 담합을 둘러싸고 공정위와 검찰이 동시에 강한 메시지를 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생활물가는 숫자 게임이 아니다. 한 번 올려놓고 천천히 내리는 방식, 원가를 핑계로 경쟁을 비껴가는 방식, 시장 상위를 차지한 사업자끼리 호흡을 맞추는 방식은 결국 소비자의 지갑을 비우는 일이다. 공정위가 이번에 강한 제재를 내린 건 단지 벌금을 매긴 것이 아니라, 그 오래된 관행에 경고장을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 밀가루는 평범한 식재료지만, 그 가격 뒤에는 시장 질서가 그대로 비친다.
이번 사건은 결국 한 가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민이 매일 사는 빵과 라면, 국수의 가격은 결코 우연히 정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쟁이 무너지면 식탁도 바로 흔들린다. 그래서 민생 품목의 담합은 더 엄하게 봐야 한다. 시장은 스스로 정화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끝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